philosophy
저는 사진을 거의 안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 정리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 Ascendy
저는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어디 놀러 가면 한두 장 찍고, 평소에는 아예 안 찍습니다. 그러니 사진이 쌓일 일도 없고, 정리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 정리 때문에 곤란했던 기억이 저한테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사진 정리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정리가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반대입니다. 음식이 나오면 인증샷을 찍고, 물건을 사면 기념으로 찍습니다. 여행 계획은 전부 아내가 세우는데, 그때 필요한 정보나 티켓도 전부 사진으로 저장해 둡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는 아기 사진을 수백 장씩 찍었습니다.
저도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짜로 아기 사진만 찍습니다. 그래서 제 갤러리는 여전히 정리할 게 없습니다. 아내의 갤러리는 아기 사진과 음식 사진과 티켓 사진이 전부 뒤섞여 있습니다.
정리가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첫 번째 부탁은 실패했습니다
작년 봄 아기 돌잔치를 했습니다. 사진이 나왔는데 아기가 너무 울어서 표정이 죄다 울상이었습니다.
재밌는 건, 아내가 처음 부탁한 상대가 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GPT한테 부탁했습니다. 표정만 살짝 밝게 보정해 달라고. 지금 같은 이미지 모델이 나오기 전이었고, 돌아온 건 아이 얼굴이 다른 얼굴로 바뀐 사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부탁이 왔습니다. 간단한 보정이 되는 AI를 만들어 달라고.
만들어 보려다 접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고 둘 다 사실입니다. 하나는 제가 이미지 모델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른 하나는,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이건 결국 가장 큰 데이터와 가장 큰 컴퓨터를 가진 회사가 이기는 판이라고 봤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탁
그래서 물었습니다. 다른 거 필요한 건 없냐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사진 정리하는 AI를 만들어 달라고.
이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개발자고, 마침 AI에게 시켜서 코드를 쓰는 방식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든 건 쓸모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에 태그가 붙고, 그 태그로 검색이 되게. 동작은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복잡한 걸 물어보면 바로 갈렸습니다.
“올해 아기 데리고 여행 갔다 왔는데, 그게 언제였지?”
“아기랑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중에 좀 잘 나온 것만 골라서 보여줘.”
이런 건 태그 검색으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이 사진을 하나씩 다 봐야 했습니다. AI를 붙였는데 사람이 하는 일은 그대로였습니다. 얻은 게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게 제일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검색창을 하나 더 주는 것과 정리를 대신 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앞의 것은 만들기 쉽고, 만들고 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AI가 실제로 잘하는 쪽으로 다시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하나씩 고쳤습니다. 그게 반복되면서 프로젝트에 계속 살이 붙었습니다. 남의 사진을 맡아두는 이상 보안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혼자 만들다 보니 어느새 사진 클라우드 하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 상태로 저는 만족합니다. 시간, 장소, 인물로 정리가 잘 되고, 찾고 싶은 건 찾습니다.
다만 이건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저는 원래 정리할 사진이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제 라이브러리는 이 서비스한테 쉬운 문제입니다. 아내도 나름대로 잘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이 서비스는 사실상 저와 아내의 사용 방식에 맞춰 다듬어졌습니다.
사람마다 찍는 사진의 종류가 다르고, 정리하고 싶은 기준도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인물별로, 누군가는 여행별로 묶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영수증이나 서류 사진만 따로 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앉아서 상상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써보고 어디가 불편한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내의 불만이 이 서비스를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다음은 다른 분들 차례입니다.
ascendy.ai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올려둔 사진이 시간·장소· 인물로 정리되고, 찾고 싶은 건 말로 요청합니다. 웹에서 씁니다. 가입 화면은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받고, 요금제에 무료 플랜이 있습니다. 앱은 아직 없습니다.
써보시고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 주세요. 그게 지금 저한테 제일 필요한 정보입니다.
같은 시작점을 엔지니어 관점에서 쓴 글은 따로 있습니다: 사진은 저장이 아니라 ‘못 찾는 것’이 문제였다.
Tags: photo-management, family-photos, why-i-built-this, ai-organiz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