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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서 소외된 사람들 — 나도 백수였다
· Ascendy Engineering
TL;DR
- 나는 매달 수십만 원의 구독료를 큰 부담 없이 내고, 그걸로 시간을 레버리지로 쓰는 선순환 안에 있다. 그런데 문득,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 AI를 무료로 줘도 안 쓰는 사람이 있다. 장벽은 돈만이 아니다 — 쓸 계기도, 의지도 없는 것이다. AI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 때 강력한 레버리지인데, 애초에 그럴 일이 없으면 무료로 쥐여줘도 안 쓴다.
- 이건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쉬었음 청년’은 46만 명을 넘어 5년 만에 최대치다. 그리고 나도 — 고시에 떨어지고 반년을 백수로 보낸 적이 있다. 그때는 뭔가 생산적인 걸 하고 싶지가 않았다.
- 그래서 AI는 격차를 돈 축이 아니라 의지·계기 축을 따라 가속할지도 모른다. 접근을 보조할 순 있어도 의지는 보조할 수 없으니까. 깨끗한 해법은 나도 모른다. 다만 나를 꺼낸 건 더 싼 도구가 아니라 불씨와 온램프였다.
이 글에 대하여. 답을 아는 척하는 글이 아니다 — 나도 해법을 확신하지 못한 채, 정직하게 던지는 질문에 가깝다. AI는 레버리지다를 쓰고 나서, 그 레버리지를 못 쥐는 쪽에 대한 양심 같은 글이다. 등장하는 친구는 특정되지 않도록 일반화했다.
무료로 줘도 안 쓰는 친구
얼마 전 일을 쉬고 있는 친구와 얘기하다가, AI 얘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AI를 거의 안 쓴다고 했다. 업무적으로 쓸 일이 없고, 별로 필요성도 못 느끼고, 구독할 돈도 아까워서 — 무료 티어로 가끔 검색하듯 쓰는 정도라고.
물론 그 앞에서 “나는 이만큼 쓴다”고 자랑한 건 아니다. 그냥 조용히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다니고, 현업에서 AI를 쓰고, 개인 돈으로도 AI를 굴리는 나와 — 이 친구 사이의 격차는, 10년 뒤에 더 벌어지겠구나.
여기서 내가 놓칠 뻔한 게 있다. 처음엔 “돈 문제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친구는 사실 무료로 AI를 쓸 수 있다. 무료 티어가 있으니까. 그런데도 안 쓴다. 왜냐면 —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장벽은 돈이 아니라 ‘이유’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이다. AI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할 때 엄청난 파워를 가진 도구다. 코드를 짜든, 문서를 만들든, 분석을 하든 — 할 일이 있을 때 레버리지가 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할 일이 없으면 그 파워는 발휘될 데가 없다. 일을 쉬고 있어서 적용할 실무가 없고, 그래서 필요성도 못 느끼는 사람에게는 — AI를 아무리 싸게, 심지어 공짜로 쥐여줘도 잘 안 쓴다. 장벽은 $20이 아니라, AI를 쓸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다.
그래서 격차는 “구독료를 낼 수 있는 사람 vs 없는 사람”보다 더 깊은 곳에서 갈린다. AI를 쓸 계기와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복리가 붙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료 접근조차 닫힌 문을 열지 못한다.
이건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친구 한 명만의 얘기라면 개인적인 사연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한국의 ‘쉬었음 청년’ — 일하지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고 답한 청년 — 은 2026년 1월 46만 9천 명으로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은행도 한 이슈노트에서 그 배경으로 “AI 기반 기술변화, 경력직 선호 등 구조적 변화”를 청년 노동시장을 악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로 지목한다.
즉 AI는 여기서 이중으로 작동한다. 한쪽에서는 신입이 들어갈 자리를 줄이고(그래서 청년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리고), 다른 쪽에서는 이미 일하는 사람의 생산성을 레버리지로 키운다. 밀려난 사람과 올라탄 사람 사이의 간격을, AI가 양쪽에서 벌리는 셈이다.
나도 거기 있었다
이 얘기를 남 일처럼 쓰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나도 거기 있어 봤기 때문이다.
나는 고시를 준비하다 떨어졌고, 그 뒤로 반년쯤을 백수로 지냈다. 그때를 돌아보면 —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잘 안 생겼다. 무료든 유료든 강력한 도구가 눈앞에 있어도, 그걸 집어들 이유가 내 안에 없었다. 그 상태를 겪어봤기에 안다. “AI 좋으니까 써봐”라는 말이,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공허한지.
그러니 나는 이 격차를 “게으름 vs 부지런함”으로 나누고 싶지 않다. 그건 상태에 대한 이야기지, 사람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뭘 할 수 있나 — 나를 꺼낸 것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거다. 접근(무료 AI)이 답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람을 그 상태에서 꺼내는가? 나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불씨.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봤다. 그냥 보면서 “저런 걸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흥미 하나였다.
둘째, 온램프. 고시에 떨어지고 백수로 지내다 “개발자가 되어봐야겠다”고 찾아보던 중, 한국무역협회 무역아카데미의 SC IT Master 과정을 알게 됐다. 일본 IT 취업에 특화된, 20년 넘은 국비 교육 프로그램이다(졸업생이 수천 명에 이른다). 완전한 컴맹이던 내가, 거기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꾸고 일본 취업까지 했다.
핵심은 이거다. 나를 꺼낸 건 더 싼 AI가 아니었다. 집어들 이유(불씨)와, 초보를 실제 일자리까지 데려가는 구조화된 길(온램프)이었다. 그리고 그 일자리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AI를 쓸 계기가 생겼다. 순서가 반대다 — 도구가 먼저가 아니라, 이유가 먼저다.
정직하게 — 나도 답은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해법을 안다는 건 아니다. 불씨는 만들어줄 수 있을까? 온램프는 늘릴 수 있을까? 아마 어느 정도는. 하지만 의지 자체를 남에게 쥐여줄 수는 없다. 자유롭게 쓰라고 도구를 공짜로 뿌려도, 스스로 뭔가 해보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많이 쓰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글은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닫는다. AI가 격차의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가 손댈 수 있는 건 아마 접근성보다 앞에 있다 — 불씨와 온램프. 사람들에게 쓸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 그게 도구를 싸게 뿌리는 것보다 어렵고, 그래서 나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지금 그 레버리지를 쥔 쪽에 서 있고, 반대편에는 한때의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 “AI는 최고의 도구”라고만 쓰는 건, 정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가져갈 것
- 무료로 줘도 안 쓴다. AI 격차의 장벽은 돈만이 아니라, AI를 쓸 계기와 의지가 있느냐다.
- AI는 격차를 양쪽에서 벌릴 수 있다. 신입 자리를 줄여 사람을 밀어내고, 일하는 사람의 생산성은 레버리지로 키운다.
- 나도 거기 있었다. 백수 시절엔 강력한 도구가 눈앞에 있어도 집어들 이유가 없었다. 이건 자질이 아니라 상태의 문제다.
- 접근이 아니라 이유가 먼저다. 나를 꺼낸 건 더 싼 AI가 아니라 불씨(흥미)와 온램프(구조화된 길)였다. 의지는 못 나눠주지만, 불씨와 길은 만들 수 있다.
솔직히 이 글은 해법이 아니라 불편함의 기록이다. 그런데 AI로 시간을 레버리지 삼는 얘기를 쓰려면, 그 레버리지를 못 쥐는 사람들 얘기도 같이 써야 정직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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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ai, inequality, career, society, opinion, future-of-work